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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 없는 챔피언' 김해림 "내년엔 상금왕 도전"

송고시간2017-03-22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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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동안 체력 훈련 효과 '만점'…"비거리 늘고 정신력 강해져

우승 퍼트를 성공시키고 주먹을 불끈 쥔 김해림.
우승 퍼트를 성공시키고 주먹을 불끈 쥔 김해림.

(서울=연합뉴스) 권훈 기자 = "나중에 호텔 와서 알았는데 황당하더라고요. 시상식 땐 정치는 잘 모르지만, 한국과 중국이 다시 교류가 활발해지길 바란다고 말했죠."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 2017년 개막전 SGF67 월드 레이디스 챔피언십에서 우승한 김해림(28)은 인스타그램에 자신이 '얼굴 없는 챔피언'이라는 글을 올렸다.

중국 하이난 미션힐스 골프장에서 치러진 대회 최종 라운드 중계를 맡은 중국 CCTV가 김해림의 얼굴을 한번도 제대로 보여주지 않아서 생긴 별명이다. CCTV는 심지어 우승 퍼팅 때도 김해림의 발만 보여줬고 우승을 확정 지은 뒤에는 아예 먼 거리에서 화면을 잡아 김해림의 얼굴은 손톱 크기로 보였다.

김해림은 사드 부지를 제공한 롯데의 후원을 받는 선수라서 생긴 일이다.

김해림의 모자 정면에 붙은 롯데 로고를 노출하지 않으려는 꼼수였다.

졸지에 '얼굴 없는 챔피언'이 된 김해림은 연합뉴스 전화 인터뷰에서 "1라운드 경기 중계방송 때는 내 얼굴이 잘 나왔다. 2라운드는 중계방송 전에 경기를 끝냈기에 중계방송을 타지 못했다. 최종 라운드에 그런 일이 벌어지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시상식을 마치고 호텔로 돌아와서 인터넷으로 기사를 보고 알았다. 황당했다"고 말했다.

김해림은 "그래도 밖에 나갈 때는 롯데 로고가 박힌 모자를 쓰지 않는 게 좋겠다고 해서 벗어놓고 나갔다"면서 "그렇지만 호텔과 경기장에서 만난 중국인은 모두 친절했다"고 현지 분위기를 전했다.

김해림은 '중계방송 보복'을 전혀 모른 채 시상대에 올랐다. 그는 수상 소감을 밝히면서 "정치는 잘 모르지만, 한국과 중국이 다시 활발하게 교류하면 좋겠다"고 말해 박수를 받았다.

중국 CCTV의 치졸한 중계 탓에 우승 소식이 더 주목받은 김해림은 "그래도 우승은 언제나 기분 좋은 일"이라며 웃었다.

김해림은 KLPGA투어에서는 보기 드문 '대기만성형' 선수다.

그는 지난해 4월에야 생애 첫 우승을 거뒀다. KLPGA투어에 입성한 지 9년 만이었다. 다섯 달 만에 두 번째 우승을 차지했다. 9년을 침묵하다 2년 사이에 3승을 올렸다.

지난 시즌을 상금랭킹 6위로 마친 김해림은 상금랭킹 10위 이내 선수 가운데 유일한 1980년대 출생 선수였다. 나머지 9명은 모두 1990년대에 태어났다.

김해림은 "원래 시작이 늦었다. 중학교 3학년 때 골프를 시작했으니 이제 겨우 13년 됐다. 골프가 10년은 해야 기술적으로 완성 단계에 접어든다고 한다. 그때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단순히 구력이 오래여서 이렇게 꽃을 피운 건 아니라고 김해림은 강조한다. 지독한 노력이 있었다는 얘기다.

"샷은 정말 많은 노력을 기울인 게 열매를 맺는 것 같다"는 김해림은 "기술적인 발전 말고도 진짜 중요한 요인이 하나 있다"고 운을 뗐다.

김해림은 롯데 골프단 지유진 감독을 만난 게 골프 선수로서 새로운 경지에 오른 계기라고 밝혔다.

"전에도 열심히 하긴 했지만, 대회장에 나오면 마음이 편하질 않았다. 재미도 없었고…"라는 김해림은 "5년 전 지유진 감독과 사제의 인연을 맺고선 마음가짐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시시콜콜한 속마음을 다 털어놓을 수 있는지 감독 덕분에 즐겁고 편한 마음으로 대회를 치를 수 있었고 골프에 재미를 붙였다.

김해림은 남들이 다 가는 해외 전지훈련을 안 간 지 오래다. 4년째 국내에서 겨울 훈련을 했다.

겨울 훈련에서 스윙 연습보다는 체력 강화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이다.

체력 훈련 하러 해외로 나갈 이유가 없다는 판단이다.

그는 "체력 강화 훈련에서 중요한 게 영양 보충인데 집에서 어머니가 해주시는 집밥을 먹으면서 훈련하는 게 가장 효과적"이라고 설명했다.

지난겨울에도 김해림은 체력 훈련에 땀을 쏟았다.

하루에 2∼3시간씩 근육 강화 훈련에 매달렸다. 다만 근육만 단련했던 작년과 달리 전담 트레이너를 채용해 스트레칭과 마사지로 근육의 유연성 향상에 남다른 정성을 기울였다.

한때 몸을 만들려고 매일 달걀 한판씩 먹어 '달걀 골퍼'라는 별명을 얻었던 김해림은 "지난겨울에는 아침에 달걀 6개만 먹고 점심 저녁엔 고기를 주로 먹었다"고 귀띔했다. 몸무게가 5㎏ 이상 늘었는데 그만큼 근육량이 늘어났다.

김해림은 "효과를 봤다"고 자랑했다. 비거리가 눈에 띄게 늘었다. "작년보다 드라이버 비거리를 10m는 쉽게 더 보낼 수 있다. 마음먹고 때리면 20m 정도 더 나가는 것 같다"고 말했다.

비거리 향상에는 겨울에 배우기 시작한 검도 덕도 봤다. 손목을 채는 순간 동작이 더 정확하고 빨라졌다.

SGF67 월드 레이디스 챔피언십 최종 라운드에서 배선우(23)와 매치플레이를 방불케 하는 우승 경쟁을 벌이면서도 늘어난 비거리 효과를 톡톡히 봤다.

"힘 빼고 툭툭 칠 때는 (배)선우와 비거리 차이가 거의 없었다. 두번째 연장 때 투온으로 승부를 걸자고 마음먹고 드라이버를 마음먹고 쳤더니 20m 이상 차이가 나더라"고 김해림은 자랑했다.

지난해 첫 우승을 하기 전까지 김해림은 '새가슴'이었다. 잘 나가다 고비 때면 제풀에 주저앉곤 했다.

하지만 첫 우승 이후 두번 우승이 모두 연장전 승리다. 김해림은 "고비나 승부처 때도 평상심을 유지하게 된 게 비결"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우승 때도 최종 라운드에서 배선우와 피 말리는 접전을 이어갔지만 하나도 초조하거나 답답한 느낌은 없었다. 그는 "진다는 생각이 아예 들지 않았다"고 말했다.

김해림은 워낙 겨울 훈련이 만족스러웠기에 첫 대회를 치르기 전부터 기대치가 높았다.

"원래 상반기에는 성적이 잘 나오지 않는 편이다. 그런데 올해는 워낙 컨디션이 좋아서 서너 차례 대회를 치르면 좋은 결과가 나올 것 같았다. 그런데 기대 이상 빨리 우승이 나왔다"는 김해림은 올해 목표는 '상금 3위 이내'라고 밝히면서도 "하반기에 성적을 봐서 목표를 상향 조정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박성현(24)이 떠난 국내 무대에서 치열하게 전개될 넘버원 경쟁에 뛰어들 용의가 있다는 뜻이다.

그는 "전인지, 박성현이 떠나고 나니 스타가 없다고 걱정하는 말씀들을 많이 하신다. 더 잘해서 한국여자프로골프의 인기와 흥행을 책임져야 한다는 책임감과 중압감을 아주 많이 느끼고 있다"고도 말했다.

김해림은 "이른 시일 안에 우승해서 자신감이 생긴 건 사실이지만 일단은 애초 목표에 집중하겠다"면서도 "올해 3위 이내에 들면 내년에는 상금왕에 도전할 생각이지만 올해도 할 수 있다면 하고 싶다"고 말했다.

김해림은 내년이면 한국 나이로 서른 살이 된다. 한국여자골프에서 서른 살 상금왕은 낯설다.

김해림의 꿈은 이게 다가 아니다.

"올해는 국내 무대에서 더 집중하겠지만, 차차 해외 대회에도 눈을 돌려볼 생각"이라는 그는 "후원사 롯데가 개최하는 미국 대회와 일본 투어에도 출전해서 경험을 쌓겠다"고 말했다.

김해림은 "(나이 어린 선수가 지배하는) 국내 골프 문화가 좀 바뀌었으면 한다"고 운에 떼더니 "나이 든 선수는 조금만 부진해도 지원을 끊는다. 좀 더 진득하게 오래도록 후원을 해준다면 나이 든 선수들도 얼마든지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다고 본다"고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김해림의 이번 우승에는 베테랑 캐디 최희창(42)씨가 함께 했다.

프로야구 해태 타이거즈에서 잠시나마 1군 무대를 뛴 최 씨는 한국여자프로골프 전문 캐디 1세대다.

서희경, 유소연, 양수진, 양제윤 등 정상급 선수들의 백을 멨다.

"성격이 잘 맞는다. 긍정적인 말을 해주는 캐디를 선호하는 편인데 그런 면에서 적격"이라면서 김해림은 "캐디 분도 오랜만에 우승이라 아주 기뻐했다"고 말했다.

버디를 잡아내고 캐디와 주먹을 마주치는 김해림.
버디를 잡아내고 캐디와 주먹을 마주치는 김해림.

김해림은 '기부천사'로도 유명하다. 김해림은 "올해도 상금 10%는 어려운 이웃 돕기에 내놓겠다"고 다짐했다.

올해 가장 우승하고 싶은 대회를 묻자 김해림은 "작년에 우승했던 대회나 상금 많은 대회를 흔히 꼽지만 어떤 대회든 가리지 않겠다. 무조건 많이 우승하고 싶다"면서 깔깔 웃었다.

khoo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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